디즈니의 시대는 다시 올 것인가. '토이 스토리''슈렉'등의 3D 애니메이션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로 쓴 픽사와 드림웍스의 성공 뒤에서 잠시 주춤하고 있는 디즈니의 첫번째 100% 3D애니메이션 '치킨 리틀'이 11월 개봉한다. '치킨 리틀'은 2D 시대를 접은 디즈니의 미래를 결정짓는 작품이라는 점 뿐만이 아니라 디즈니의 유일한 한국인 원화 애니메이터 김상진(46.사진)씨가 수석(lead) 애니메이터로 참여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치킨 리틀' 작업을 마치고 2008년 개봉 예정인 '라푼젤'의 캐릭터 디자인 담당으로 바쁘게 보내고 있는 김씨를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 버뱅크의 디즈니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캐릭터 디자인 담당은 캐릭터 설정을 책임지는 중책이다.

김씨는 "'치킨 리틀' 마무리 단계이던 올 초에 2008년 선보일 두 개의 프로젝트 감독으로부터 동시에 캐릭터 디자인 총괄과 수퍼바이징(총괄) 애니메이터의 중책을 제안받았다"며 "내 손끝으로 고전을 재해석할 수 있어 '라푼젤'을 택했다"고 말했다.

'미녀와 야수''알라딘' 등 고전 작품으로 재미를 봤던 디즈니가 톡톡 튀는 신세대 감각의 '치킨 리틀'로 방향전환을 하는 듯 싶더니 왜 다시 '라푼젤'이라는 고전을 끄집어 냈는지 궁금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실사영화에서도 얼마든지 뛰어난 리메이크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처럼 애니메이션에서도 오래된 소재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매력적인 소재로 검증받은 만큼 이를 어떻게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키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요즘 애니메이션 팬들, 특히 한국 관객들에게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더이상 '쿨'하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다. 뻔히 예상할 수 있는 스토리에 틀에 박힌 이분법적 선악 구도, 거기다 비슷한 음악까지-. 하지만 역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잘 갖춰진 스튜디오 시스템과 살인적인 경쟁구조 등 디즈니의 저력이 이런 판도를 뒤바꿀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외국의 TV애니메이션 하청일을 맡아 한국의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일하던 김씨는 1989년 캐나다의 작은 TV용 애니메이션 회사로 옮기며 국제무대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95년 애니메이터라면 누구나 꿈꾸는 디즈니와 처음 인연을 맺어 첫 작품 '판타지아 2000'을 시작으로 '타잔' 등 주요 작품에 참여했다. 김씨는 "맨 처음 도널드 덕 캐릭터를 주문받고는 며칠 밤낮으로 열심히 그려 윗사람에게 가져갔더니 빨리 하는 게 꼭 좋은 게 아니라며 '스스로 만족할 때 오라'더라"는 경험을 털어놓으며 이런 완벽함이 오늘의 디즈니를 만든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직업이 애니메이터인만큼 김씨가 미술을 전공했을 것이라 여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는 경제학을 전공했다. 적록 색약이라 그림 그리는 소질이 있었음에도 미대 입학이 좌절됐기 때문이다. 졸업 후 어떻게든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려고 발버둥치다 우연히 신문에 난 애니메이션 업계 기사를 본 게 계기가 돼 이쪽으로 발을 들여놓은 그는 애니메이터를 '천직'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최근작인 '타잔'은 이달중 특별판 DVD로 국내에서 발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