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고풍·미니멀리즘·빈티지의 혼합…블랙, 트렌드 컬러로 떠올라
일부 진보적인 패션 스타일리스트들은 ‘트렌드는 없다’고 말한다. 대형 업체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출시 상품을 구성했을 뿐인데, 대중은 그것을 ‘최근 유행하는 패션 사조(思潮)’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즉 트렌드가 아닌, ‘조작된 트렌드’란 것인데 이런 그들의 주장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작된 트렌드라 폄하해도, 그것은 대형 업체들 나름대로의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토대로 도출된 결론이기에 무시할 수도 없다. 이에 본지에서는 업체를 중심으로 이번 시즌 도수테의 2006 F/W 트렌드를 전망하는 자리를 총 3회에 걸쳐 마련했다. <편집자 주>
레트로·빈티지의 강세
지난해부터 꾸준히 그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오버사이즈와 보잉 스타일의 선글라스 트렌드는 도수테, 즉 안경에도 그대로 이어져 이번 2006 F/W에도 그 같은 테마는 많은 브랜드에서 동일하게 나타날 전망이다.
하지만 어떤 테마든 그것이 길어지다보면 그 반대급부의 또 다른 테마, 즉 안티-패러다임이 출현하기 마련이고, 도수테에서도 안티-패러다임으로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성향이 선보일 것이다.
그 대표적인 주제는 바로 레트로 스타일이다. 패션과 외모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남성을 일컫는 ‘메트로섹슈얼(metrosexual)’의 반대 개념인 ‘레트로섹슈얼(retro sexual)’은 외모 꾸미기와 몸치장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남성을 지칭하는데, 비슷한 맥락에서 레트로 스타일은 ‘과거 아름다움으로의 회귀’를 뜻한다.
레트로는 기본적으로‘과거에의 동경’을 테마로 하고 있기에 이는 곧 복고풍의 또 다른 의미로도 차용할 수 있다. 이에 덧붙여 ‘과거의 아름다움’은 ‘예전에 쓰던 물건에 대한 그리움’과도 연결될 수 있는 주제이기에 ‘빈티지(vintage)’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즉 레트로와 빈티지는 2006 F/W 시즌의 한 축을 이룰 아이웨어 스타일로 전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라이트옵틱의 김진욱 대표는 “이번 F/W 시즌에도 도수테는 역시 복고 빈티지 형태가 각광받을 것”이라며 “세계 아이웨어 시장을 이끌고 있는 유럽은 뿔테에 열광하고 있으며, 현재 유럽의 명품브랜드와 하우스브랜드 아이웨어의 도수테 프레임의 메인 모델들이 거의 빈티지 스타일의 뿔테”라고 전했다. 이와 함께 그는 “하지만 기본적인 빈티지가 작년과 올 봄의 트렌드였다면 올 가을 한국 아이웨어 시장은 거기에 새로운 컬러풀한 뿔테와 전면부 뿔테, 메탈 템플의 콤비네이션 프레임이 새롭게 모습을 나타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아이쓰리옵틱(대표 채형오)의 하성호 이사는 “올 여름에 시장을 선도하던 복고풍의 오버사이즈가 그대로 가을 프레임 시장에도 영향을 주어, 다소 큰 사이즈의 림에 두꺼운 스타일의 템플이 조합된 스타일이 나타날 것”이라며 “다양하고 화려한 컬러가 접목되어 무거워 보일 수 있는 분위기를 상쇄시키며, 밝은 이미지의 프레임이 주목받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믹스&매치의 재조명
아이웨어의 소재면에서 살펴봤을 때, 지난 S/S 시즌 가장 주목을 끌었던 것은 믹스&매치였다. 이 역시 지난 상반기 각종 국제 광학전시회를 통해 대거 선보였던 테마로써 이는 이번 시즌에도 여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독광학(대표 박광재)의 주종미 대리는 “비비드 컬러의 클래식한 스타일 아세테이트, 베타-티타늄, 스테인레스 스틸의 가벼운 무게감을 강조한 메탈 등으로 각 양분화 되어 있는 추세”라며 “점차 짙은 컬러의 아세테이트가 강세를 이룰 것이며, 디자인적 요소만을 강조하기보단 아직 실용성에 바탕을 둔 복고 클래식 스타일이 꾸준히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덧붙여 룩옵틱스(대표 허명효)의 김흔하 과장 역시 “프레임에서는 메탈과 플라스틱의 조합 모델인 콤비네이션 스타일이 주종을 이룰 것”이라며 “전체적으로 복고형의 뿔테가 유행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지만, 복고형도 조금씩 변형되어 새롭게 태어난 복고의 느낌을 줄 것이다”고 전망했다. 또한 그는 “따라서 좀더 과감해지거나 심플해진 모양이, 다양한 개성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어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S/S 시즌 단순미, 절제미를 강조하는 미니멀리즘의 영향으로 극도로 장식을 자제하던 분위기에서 F/W로 접어들며,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세원I.T.C.(대표 이원재)가 선보인 ‘Jean Paul GAUL TIER’에는 아프리칸 프린트를 연상시키는 현란한 무늬가 템플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이빅(대표 이연화)이 최근 선보인 ‘mogura’의 템플에는 마치 아트 스크래치로 표현한 듯한 감각적인 무늬 패턴이 블랙과 레드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이 같은 현란한 장식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파격적인 디테일 장식으로, 미니멀리즘이라는 대세와는 정 반대되는 테마였다.
이번 시즌 이 같은 장식의 출현은 내년도 패션 트렌드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내년도 패션 트렌드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잣대’로 불리는 지난 7월에 열린 프랑스 파리의 오트쿠튀르(haute couture)에서는 중세의 화려함을 표현한 에스닉 스타일(ethnic style)의 치마와 투피스 등이 새롭게 이목을 끌었다. 즉 아이웨어의 이 같은 화려한 장식은 ‘다시 돌아온 유행의 한 부분’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트렌드의 혼합물은 블랙
올초 뉴욕에서 열린 Anna Sui의 패션쇼와 지난 8월 서울의 Marc Jacobs 2006 F/W 패션쇼에서는 온통 블랙의 의상이 무대를 가득 장식했다.
그간 발랄하고 여성스런 컬러로 귀엽고 사랑스런 여성의 이미지를 구축해왔던 그들이 F/W의 메인 컬러로 블랙을 내세웠다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추세로 분석할 수 있다. 흔히 불경기에는 블랙을 위주로 어두운 색이 유행한다는 속설이 있다.
블랙에서는 암울한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지만, 이에 더해 존엄과 품위의 이면도 지니고 있음을 빼놓을 수 없다.
이번 시즌 아이웨어 업계에서 예상하는 메인 컬러는 바로 블랙이다. 이는 복고풍과 미니멀리즘, 그리고 빈티지라는 시즌 트렌드를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컬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추세에 대해 한민옵티칼(대표 송미숙)의 한효석 이사는 “복고와 빈티지는 색채학적으로 회색과 무채색을 연상시키는 것이 보편적”이라며 “2006 F/W, 더욱 뚜렷한 미니멀리즘한 트렌드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회색에서 더욱 짙은 블랙계열을 선택해야 선(線)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이 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6년 가을 거리에서는 짙은 컬러의, 최소의 스킬로 표현한 빈티지·복고의 아이웨어를 착용한 여인들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